동국사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금강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한다.
당시 금강사는 '포교소'였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1947년 불하받아 사찰 기능을 재개하였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김남곡[1913~1983]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내고,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등록 문화재 제64호인 대웅전은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 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무척 단조롭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룬다.


동국사는 2003년 7월 15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 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웅전에 있는 석가 삼존불은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 동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상 및 복장 유물
 
소조 석가여래 삼존 불상은 동국사에 봉안된 불상으로 본래 1650년에 제작되어 금산사 대장전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사에서 현재의 동국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복장 유물을 통하여 불상의 조성 시기, 조성 주체를 알 수 있어 당시의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석가여래불, 가섭 존자, 아난존자의 구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9월 5일에는 이러한 가치를 모두 인정받아 보물 제171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소조 석가여래 삼존 불상은 본래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봉안되었다. 해방 이후 동국사의 일본인 승려들이 일본 불상을 가지고 귀국하자 당시 주지승인 김남곡이 금산사에 양해를 구하고 삼불상을 현재의 동국사로 옮겨왔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각 좌, 우측에 가섭존자, 아난존자가 위치하고 있는데, 자연스러운 자세와 생동감 있는 표정이 특징적이다. 복장 유물로는 경전류, 후령통[복장에 넣는 통] 등 373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해 불상의 조성 시기, 조성 주체 등을 알 수 있다. 불상 조성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승려인 호연 태호(浩然 太湖)와 벽암 각성(碧巖 覺性)이 불사를 이끌고, 부드럽고 온화한 조각을 구사한 승려인 응매(應梅)가 조각을 주도하였다.

[특징]
동국사 삼존상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불과 가섭 존자, 아난존자로 구성되어 다른 절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성이 있다. 또한 불상의 조성 시기, 봉안처 등의 명확한 자료가 함께 발견되었고 석가여래불의 형식과 가섭존자상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생동감 있는 표정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불상의 봉안처인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승려들이 운영했던 사찰이다. 대웅전은 비록 내부 공간이 바뀌었지만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사찰이다. 때문에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상과 복장 유물은 해방 이후 금산사에서 가져온 불상인데 이는 일본의 억압을 벗어난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동국사

전라북도 군산시 금광동 135-1